그날 저녁 (부활2주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것을 본 제자들에게 3일이라는 시간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시간이었을 것이다. 맨탈이 붕괴된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유다인들은 승리감에 취해서 온 세상이 자기들의 것인 듯 미쳐 날뛰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은 제자들은 극도의 공포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몹시 놀랍고, 꿈만 같았던 시간들이 유다인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모두 잊혀지고, 바람에 문이 흔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겁에 질렸을 것 같다. 공포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는다.

어려서 따돌림으로 상처를 받은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여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면담을 청해 왔다. 하루는 어두운 방에서 나오게 하여 함께 드라이브를 하였는데, 학생들이 차창 밖으로 지나갈 뿐인데도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 번 더 연락이 되어서 얼굴을 보았는데, 자신은 아무래도 세상이 무서워서 밖에 나올 수 없겠다고 하면서 그 후로는 어두운 방에서 나오지 않고 지내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어렸을 때 그에게 행해진 폭력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 놓았는데, 가해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제자들은 3일 내내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들은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주님과 함께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주님의 죽음과 함께 끝난 것처럼 생각 되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다. 사람에 대한 믿음도, 건강도, 어떤 때는 신앙도 한 순간에 나에게서 사라져 버린다. 모든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가 낯선 전혀 다른 세상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모두 끝난 것처럼 그렇게 느껴진다. 

극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의 삶은 그 시간에 멈춰버린다. 멈춰진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하루하루는 고통일 뿐이다. 갑자기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남은 가족들을 보면 시간이 멈춰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순교자들이 고민하던 부분도 자신이 순교하고 난 후에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위하여 손을 내밀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게 해 손을 잡아주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황님께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준 것은 대단히 복음적인 행동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는 오시어 그들 가운데에 서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등장은 그동안 주님의 부재로 인하여 겪었던 두려움을 한 순간에 없애게 된다. 즉 제자들의 두려움은 외적으로는 유다인들의 보복이었지만, 사실은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주었던 예수님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상태에 머물지 않게 된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두려워하였던 세상으로 그들을 파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불안함, 고통, 두려움의 상황은 우리를 무척 힘들게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 난국도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회에 신앙을 접겠다고 이야기 한다. 고통이 우리를 덮칠 때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만나게 되면 언제 신앙인이었었나 하듯이 얼굴도 바뀌어 있는 것을 보는 경우 삶이 무엇이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그것은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두려움이 클수록 주님을 우리 가운데 모셔야 한다. 

오늘 말씀은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그날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는 비어있는 무덤을 보기도 하고, 천사와 예수님을 만나기도 하였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도 비어있는 동굴의 상황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레아로 가라고 하는 메시지를 막달레나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아마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로부터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걸어가셨고 빵을 떼실 때에야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모든 일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토마스의 행동도 이해불가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신에 찬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예수님은 토마스를 위하여 여드레 뒤에 제자들을 몸소 찾아 주신다. 

주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하고 소식을 들은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은 몇 사람이 전해 준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마음에 평화는 없었다. 제자들이 전해 준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들은 토마스 역시 마음에 평화를 가지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들과 뭐가 다른가? 

예수님의 서비스 방식은 독특하다. 무덤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하여 자신의 부활을 알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레아로 가라고 말하였지만, 그들이 저녁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자 몸소 그들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토마스를 찾아오라고 하지 않고, 그만을 위하여 다시 나타나셔서 자신의 몸을 보여 주신다. 정말 꼼꼼한 찾아가는 서비스다. 

나는 그분을 만났는가? 만났다는 것은 안다는 것과 다르다. 두려움과 공포와 고통 속에서 나에게 오시어 ‘평화가 너와 함께’라고 말을 건네시는 그분을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의 사랑에 믿음을 갖자. 제자들의 노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찾아 주시고, 그들의 부족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주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들 가운데 오시고, 내 마음에 오시어 평화를 주신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는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에게 오셨듯이, 고통과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자들을 보내신다.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그들 가운데 나타나서 주님의 평화를 빌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뵙고 기뻐하도록 해야 할 소명을 받았다. 

멋진 주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모신 우리 역시 멋진 신앙인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Online Giving

Online Giving

Secure and Convenient Donate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