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etare Sunday (Mothering Sunday)

사순 제4주일

 

사순 제 4 주일: 눈먼 자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구걸하던 이, 그와 닮은 사람, 당신,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등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 먼 사람에 관한 호칭이다. 그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 당신 사람들로부터 인간 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요즘 말로는 투명인간, 아니면 거추장스러운 사람이었다.

세상의 눈은 계속 그 사람을 불편하게 보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가 살아오던 사회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이제 당당하게 바리사이와 맞서고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바리사이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사람들의 시선은 그대로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은 완전히 달라졌다. 구원의 상태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사순 4주일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사순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 보다는 COVID-19가 더 큰 관심거리다. 우리들의 사순절과 부활이 완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바뀌었다.  복음 말씀보다 확진자, 사망자, 치사율, 발생국, 자가 격리, 격리 해제등 익숙하게 되었다. 신자들은 주일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하고, 판공성사를 보지 못하여 부활 준비를 못하는 아쉬움을 말한다. 성당 입장에서는 신자들이 모이지 못하는 미사를 드리는 것이 안타깝고, 교무금이나 봉헌금이 없어서 본당 유지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사태가 오래 갈 경우 모두에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해결 방법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교회와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이시기를 보내요. 은총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까? 두루뭉술하게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모든 것을 잘 이끌어 주시니 이번 사태도 잘 끝날 것이라고, 하느님께서는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허락하신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답을 제시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더 이상 세상의 문제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이 있으려니 하는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몇 주째 주일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영성체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성찬례 단시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우리는 몇 주간의 사태만으로도 이런 마음인데 평생을 이런 상태로 살아왔을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마음은 매일 매일 어떠했겠는가. 

세상에는 당연한 것을 갖지 못하거나, 가졌다가 빼앗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성전을 드나 들면서 돈이나 몇 푼 던저 주면 충분했던 그 사람을 향하여 우리도 시선을 돌리고, 손을 내밀어서 그이 손을 잡아줘야 하겠다. 그것이 예수님의 행동이다. 오늘의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우리는 봐야 한다.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귀를 기울일 때 하느님의 목소리와 함께 이 시대의 죄를 짓고 태어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6411번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는 난민들, 태어남 자체가 축복이 아니고 재앙인 아이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들, 그래서 평생을 미사와 주님의 은총과 따뜻한 햇살의 고마움을 느껴보지 못하는 이 시대의 태생 소경들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의 메시지다.

편리함과 풍요로움과 안락함과 배부름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상처를 주고,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생태계에게 미안해하자.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더 이상 생태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최소한의 삶을 살도록 결심하자.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자.

이제까지의 생각과 삶의 틀을 깨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야 한다. 바리사이가 주인이 아니라 태생 소경이 자신 있게 신앙 고백을 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성찬례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작은 사람을 위한 것임도 잊지 말자.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바리사이처럼 고착화된 세상에서 살지 말고, 한때는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맞이한 태생 소경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에페소 5,14) 이 말씀처럼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을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일어나야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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